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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심회

  •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 / 신달자

  • 6/1/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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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묵상]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
시인 신달자

경제학 교수였던 남편(고 심현성 마르티노, 전 숙명여대 교수)이

1977년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그녀 나이 35세 때의 일이다.
한 달 만에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남편은 반신불수가 됐고,
수발은 24년 동안이나 이어졌다.

그녀는 일찌감치 촉망받는 시인이었지만, 시는 남편의 약값도,
셋이나 되는 아이들의 과자 값 벌이도 안됐다.

결국 양복천을 팔기 위해 보따리장수에 나섰다.

정신을 차릴 즈음,
이번에는 시어머니가 쓰러져 꼬박 9년을 '앉은뱅이'로 살다 아흔에 세상을 떠났다.

다 끝난 줄 알았던 잔혹한 운명은 자신마저 내버려두지 않아 그녀 역시 유방암을 이겨내야 했다.

혹자가 겪었더라도 '얘깃거리'가 될 만큼 가혹한 운명이다.

그런데 이런 지옥 같은 삶의 주인공이 신 달자 시인 (엘리사벳. 64세. 명지전문대 문예창작과

교수)이라면 믿을 수 있을까.
늘 세련되고 화사하며,
매력적인 눈웃음을 짓는 시인의 이야기라고 누군들 짐작이나 할까.

신 달자 시인이 '대학 교수', '한국문단의 대표 여류작가'라는 화려함 뒤에 꼭꼭 감추어놨던
인생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저자에 따르면 이 에세이는
'대학 정년퇴임 마지막 해를 앞두고 펴낸 책'이다.

남편이 타계한 이듬해인 2001년에 이미 써뒀으나,

치부를 드러내기가 쉽지 않아 출판 결정을 수백 번은 번복했다.


그러나 자신 같은 삶을 살았던 독자들이 있다면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싶어 출간하게 됐다.


에세이는 그녀가 딸처럼 여기는 제자 '희수'에게 과거를 술회하는 형식으로
'소설 같은' 삶의 편린들을 44개장과 13개의 시편에 담았다.



시인이 피를 토하듯 쏟아내는 인생사를 보면 우선은 작가에게 그러한 삶의

고난이 있었음에 놀라고, 고통을 딛고 일어서는 모습에서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으면 '온 가족 집단자살'을 생각하고,'남편의 심장을

쏘기 위해 소리 없는 총'을 구하고 다녔으며,'시어머니를 너무 미워해 여름 밤

벼락이 치면 벼락 맞을까봐 나가지를 못했다'는 악다구니를 해 댈까.


그녀는 당시의 수난을 한 마디로 함축했다.
'나는 아프지 않았지만 죽었고, 그는 아팠지만 살아있었다.'

시인을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구해준 것은 신앙이었다.

남편이 혼수상태에 빠졌을 때,
하염없이 거닐다 발걸음이 다다른 곳은 언제나 성당이었다.

그녀는 십자고상을 바라보며 '주여, 주여' 울부짖곤 했고, 곧 바로 천주교에 귀의했다.

남편은, 결국 '나 죽거든 결혼하지 마'라는 유언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시인은 남편이 참 복되게 떠났다고,
스스로도 지나고 보니 고통스러웠던 일보다
잘 견뎌낸 일만 남더라고 했다.

시인은 이제 홀로 남아 시를 쓴다.
이제는 '다 흘러 옛 이야기'가 됐고,
더 이상 세상에 진 '빚'도 없다.

그러면서도

'가끔은 그 남자 때문에 콱 혀 깨물고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웠지만 다시금 아내이고 싶다.'고 고백한다.


신명나게 도마질을 하고 수다를 떨면서
'여보! 여보!'
그렇게 자꾸 남편을 부르며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 그에게 맛보라고 권하고 싶단다.

시인에게 남은 삶은 더 이상 고통도 아픔도 아니다.
세상에는 절제절명으로 불행한 일이 없다는 진리도 깨쳤다.

그녀는 절망의 늪에서 건져 올린 희망의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적었다.

“하느님이 나의 게으른 습관을 잘 아셔서
나를 부지런하게 하기 위해 무거운 일거리를 주신 것인지 몰라. (중략)



그래서 나는 열심히 살았고 열정을 잃지 않았고,무너진 산에 깔려 있으면서도

사랑을 믿었고, 내일을 믿었고, 하느님을 알게 되었으며 축복을 받았고, 딸들을 얻었으며,

무엇이 가족 사랑인지 알았고, 어머니는 강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내게 영원히 싸우고 사랑할 것은
삶이며 아름다운 일상생활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 . . . . . . . .


- 가톨릭 신문에서-
  • 조정우

    조정우스테파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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