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커네티컷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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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심회

  • 경쟁

  • 6/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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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에겐 웃지 못할 얘기가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떠돈다고 한다.


어떤 유대인이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인이 바로 옆 동네에 세탁소를 차렸다.

그 유대인 세탁소 주인은 드러누워 끙끙 앓는단다.


한인이

자신보다 더 저렴한 가격에

더 좋은 서비스로 장사를 할 것을 뻔히 알기 때문이다.


얼마후 근처에 또 다른 한인이 세탁소를 차렸다.

그 유대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즐거운 마음으로 세탁일을 시작한다.


두 한인 세탁소가

서로 가격을 낮추다 모두 망할 것을 알기 때문이란다.


지나친 경쟁이

사업을 그르칠 수도 있지만, 그 경쟁없인 신기록이 수립되지 않음을 알아 차려야 한다.


1930년대 아버지의 신발공장을 물려받은 두 형제가 있었다.

형의 이름은 '루디(루돌프)', 동생의 이름은 '아디(아돌프)'였고,

둘은 힘을 합쳐 사업을 키워나갔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당시

작은 오해로 인해 둘의 사이는 최악에 달했고,

두 형제는 동업을 깨고 각자 자기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형인 루디가 만든 회사가 '푸마'이고

동생인 아디가 만든 회사가 '아디다스'이다.

'아디다스'는 미끄러지지 않는 특수 스파이크를 개발하여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 출전한 서독선수들에게 그 신발을 신겼다.


서독이 결승에 진출하여 헝가리와 맞붙었는데 전반은 2대0으로 뒤졌다.

그런데 갑자기 비가 왔고

후반에 헝가리 선수들은 미끄러지고 넘어지기 시작했다.

반면에 '아디다스의 축구화'를 신은

서독선수들은 후반에만 3골을 넣어 우승컵을 손에 쥐게 되며

'아디다스'의 위상이 세계적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늘 '아디다스'에 밀려 자존심을 구기던 '루디'는

천신만고 끝에 브라질 선수들에게 푸마 축구화를 공급하게 되었다.

1970년 멕시코 월드컵 결승전에서

세계적인 영웅인 '펠레'가

심판에게 타임아웃을 요청하더니 신발끈을 고쳐 묶었고

그 장면이 전세계에 중계가 되어

푸마는 최고의 축구화 브랜드로 자리매김 하게 되었다.


형제의 치열한 경쟁이 없었다면

지금의 '아디다스'와 '푸마'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 조정우

    조정우스테파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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